13세기부터 안경의 역사는 시작된다.
이탈리아에서 처음 제작되어 확산되기 시작했고 우리나라에는 선조 때 김성일이 들여왔다.
하지만 조선시대 안경과 안경집은 예술품으로 여겼다고 한다.
<조선 후기의 금속코 소뿔테 실다리안경>
눈을 보호하고 시력을 돕기 위해 쓰는 기구가 안경이다. 16세기 말 처음 국내에 들어온 서양문물이다. 한자로는 '눈 거울'이며 거울처럼 세상을 맑게 보이게 한다는 뜻이다. 세상은 늙 맑은 때보다 탁한 때가 더 많았지만 이제 국민의 절반 이상이 일상적으로 안경(또는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고 있다. 우리 조상들은 어떤 안경을 어떻게 쓰고 세상을 봤을지 궁금하지 않은가? 국내 유일의 안경 전문 박물관이 전남 무안 초당대학교에 있다.
안경은 언제부터 사용 됐을까?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13세기 말 이탈리아 베네치아 지방의 유리공예 제작자들에 의해 안경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인쇄술의 발달로 안경 수요가 늘고 확산되었다. 이탈리아 피렌체(폴로렌스) 지방 공동묘지엔 '피렌체에 살았던 안경 발명가, 여기 잠들다' 라는 묘비명이 적힌 13세기 후반 인물의 묘도 있다. 그러나 같은 시기 중국에서도 안경을 사용했다는 설도 있다.
유럽 초기 안경은 '대못안경'
서양에서 안경이 등장하는 가장 오래된 그림은 1352년 이탈리아 화가 톰마소 다모데나가 그린 <위고 대주교의 초상>이다. 두 알짜리 접이식 안경을 코에 걸고 글을 쓰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서양 안경의 초기 형태는 '대못안경'으로 불리며 나무 테에 낀 2개의 렌즈를 대못으로 이어 접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대못안경 재현품>
조선시대 가장 오래된 안경은 선조 때 외교사절로 중국과 일본을 다녀온 학봉 김성일의 것이라고 한다. 바다거북의 등껍질로 만든 '대모안경'에 피나무를 파내 만든 안경집이 전해오고 있다. 대모는 바다거북의 한 종으로 대모 등껍질로 만든 안경을 대모안경 또는 귀갑테안경으로 부른다.
조선시대에 안경이 일반화 된 것은 17세기 이후로 보고 있다. 양반들 사이에서 권위의 상징물로 부각되면서 안경을 쓰기 시작했다. 이후 19세기에 들어서면서 각 계층으로 펴져나갔다. 기생들도 안경을 사치품으로 차고 다닐 정도였다고 한다. 안경알 재료로는 경주 남산에서 생산되는 수정 '경주 남석'이 유명했다. 권력자와 부자들은 값비싼 경주 남석을 사용한 안경이나 중국의 렌즈로 안경을 사 썼다. 또한 도수가 없는 유리안경도 장식품으로 유행했다.
<국내 최초 안경 학봉 김성일 안경 재현품>
조선의 왕들 중에서는 숙종, 영조, 정조, 고종이 안경을 썼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 '정조 52권'에 정조가 눈이 나빠져 안경을 쓰고 경전을 보았고 안경은 그 당시로부터 200년 전에 들어온 물건이라는 기록이 있다.
<석류 모양 나무 안경집과 실다안경>
안경의 일반화는 조선 후기 때 였다. 그렇지만 유교 국가였기 때문에 안경을 쓰는 데도 '위아래'가 있었다. 젊은 사람이 웃어른 앞에서 안경을 쓰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고 보았다. 왕과 신하 사이에는 더 엄격했고 다음 일화가 존재한다. 헌종 때 세도가였던 왕의 외숙 조병구가 안경을 쓰고 왕 옆을 지나다가 질책을 받았다고 한다. 이를 두고 괴로워하던 그는 결국 자결하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대한제국의 독일인 외교고문 '파울 게오르크 폰 묄렌도르프(목인덕)'는 심한 근시였다. 고종 황제에게 알현을 할 때 안경을 벗고 어전에 나갔는데 잘 보지를 못해 비틀거렸다고 한다. 이에 고종은 다음부터 안경을 써도 좋다고 허락했다고 한다.
조선 시대 안경과 안경집은 예술품
당시에는 안경은 귀한 물건이였고 사용할 때보다 보관해둬야 할 때가 더 많았다. 그래서 다양한 형태와 재질의 안경집이 만들어졌고 예술품이라고 할 만큼의 아름다운 안경집들이 만들어졌다.
안경집 재료로는 구리나 철 등 금속과 오동나무, 은행나무, 대추나무 등 목재, 상어의 껍질, 비단, 삼베 등 여러 가지를 사용했다. 겉면에는 갖가지 그림을 새기거나 자수를 넣어 장식했으며 한지가 질기고 오래가기 때문에 가장 많이 이용하는 재료로 쓰였다. 한지를 여러 겹 겹쳐 바르거나 꼬아서 엮고 옻칠 또는 기름칠을 해 만들었다.
조선 후기가 되면서 안경집은 안경을 보호하는 기능보다 장식품의 용도가 되었다. 그래서 노리개의 장식품으로 매달거나 천으로 만들어 바늘집으로 쓰기도 했다. 아기 돌 때는 안경집 노리개를 목에 걸어주어 눈병이 없기를 기원했고 장수를 상징하는 동식물을 그려 넣어 장수를 빌기도 했다.
<자수 안경집>
<어피 안경집>
<나무 안경집>
안경테는 무엇으로 만들었을까?
바다거북 등껍질로 만든 '대모테'가 가장 유명했지만 소뿔이나 옥, 나무, 철사나 구리 등 금속도 많이 쓰였다. 대모 안경테는 거북이의 장수를 상징하는데다 구하기 어렵고 재질도 단단해 주로 고관대작들이 중국에서 들여왔다고 한다.
정조는 옥으로 만든 테를 썼지만 고종은 대모 안경테를 사용했다고 한다. 이승만 전 대통령도 대모 안경을 썼고 고 정주영 현대 회장 등 기업인 중에도 대모 안경을 애용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요새도 있는 '무테안경'은 이미 16세기 말에 나왔으며 테 없이 안경알에 실이나 철사, 소뿔, 금속의 안경다리를 연결한 안경이다. 하지만 안경알이 쉽게 깨지는 등의 단점들로 인해 크게 유행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무테 실다리안경>